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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로 가는 생각

두 개의 버튼 - F의 공간

by 꿈꾸는부부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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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버튼

눈을 떠보니 엘리베이터 안이다. 
1평 남짓한 공간에 어둠이 자욱하고 공기는 탁하다. 그 속에 오롯이 나 혼자 서 있다.
문은 열리지 않고 내 목소리도 밖에서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왜 이 곳에 있을까
어둠이 익숙해졌을 즈음 시선을 따라 주변을 탐색하니 버튼이 보인다.

두 개의 버튼
가까이 다가가 버튼에 적혀있는 글자를 확인한다.
하나의 버튼은 F, 나머지 하나의 버튼은 H

무슨 의미의 버튼이지?
F는 4층이고 H는 고층인가?
섣부르게 버튼을 누르면 안될 것만 같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흔히 보던 F층, 처음 보는 H층
무엇을 누를지 고민하다 익숙한 F층을 선택했다.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아래로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것을 보니 지금 있었던 곳이 4층보다 위였던지 한참을 내려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F의 공간

문이 열리고 한 걸음 떼며 밖으로 나갔다.

눈에 보이는 몇몇 사람이 내게 다가와 위로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영혼없는 말들을 내뱉고 지나갔다.

이제야 주마등처럼 기억이 스쳐지나갔고 모든 것이 떠올랐다.

내 이름은 박상현, 45세
회사에서 잘렸으며, 다음 달부터 당장 나의 수익은 '0원' 
통장엔 지금까지 모아둔 156만원이 전부

놀랍지는 않다. 늘 있어왔던 실패에 익숙해진 탓일까.
회사에서 누군가 내보내야 한다면 1순위가 나일꺼라고 내가 정리해고 우선대상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에
현재 일어난 상황은 내가 그려놓은 가장 최악의 상황이지만 예견됐던 상황인 것이다.

늘 그렇듯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또 다시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사실 회사에서 맡았던 영업직도 내게 맡질 않았다. 그저 월급만 받고 길게 목숨을 유지하는게 내 목표였으니까
사람들 만나는 것도 저자세로 비비는 것도 지옥만큼이나 싫었는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해보면 늘 이런 태도로 삶을 일관했다. 뭐 하나 미친듯이 몰입하지 않고, 딱 그 정도만 
딱 월급받을 정도만, 딱 미움받지 않을 정도만 딱 튀지 않을 정도만. 딱. 딱.
그런데 결과는 늘 실패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제 와서 이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하는 것도 지쳤다.
아내는 이혼을 통보했고 중학생 딸은 엄마랑 살겠다 한다.

앞으로 뭐하지. 156만원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을까
양육비는 무슨 돈으로 주지. 죽어버릴까
내가 죽어도 슬퍼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내게 벌어진거지?
난 그저 최악의 상황을 상상만 했을 뿐인데.
왜 상상이 현실이 된거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갈때쯤

문득 내가 탔던 엘리베이터가 생각났다.

그래. 거기서 내가 F를 눌러서 지금 여기 나온거잖아. H를 눌러야 해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현실도 지옥인데 더 지옥이 있을까? 어차피 죽을 목숨 도박해보는거야.
이렇게 엘리베에터를 집착적으로 찾는 내 모습을 보자니
무언가에 몰입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한심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난 겨우 그 장소를 찾았고 성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4면을 전부 둘러싼 거울이 스크린처럼 바뀌며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수동적이고 나태한 업무태도
가정에서도 자기중심적이고 배려없는 가장의 모습
자기개발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던 발전없는 삶
즐기며 살아야 한다며 건강을 레버리지 삼아 가까이 했던 술과 담배와 유흥
저축해봐야 의미 없다는 말을 내뱉으며 밑빠진 독에 겨우 월급으로 채워넣었던 돈을 대하는 자세
여러번 집 살 기회가 있었지만 매월 원금상환하면 내 용돈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2년마다 가족을 이사하게 했던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던 모습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삶을 내가 관람객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스크린 안의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 저랬을까.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고 나머지 하나의 버튼을 눌렀다.

H버튼을.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다시 위를 향해 상승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참을 올라간 후 멈췄다.

그렇게 나는 H의 공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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